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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역사

꼬불꼬불 맛있는 라면의 모든 것!!

국내 라면 산업의 시작

한국의 라면은 1963년 처음 대한민국에 도입 된 이래 국민 식생활 트랜드의 변화에 따라 비빔라면, 용기면, 쌀면, 건면, 볶음면 등으로 조리의 방법과 원재료가 다양화되면서 현재까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간식으로 자리를 잡아오고 있다.

국내 라면의 도입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삼양라면)을 생산하였다. 이후 1960년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라면시장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된다.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롯데라면(농심)’ 등 8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되었지만 삼양식품의 80%에 달하는 압도적 시장점유율에 밀려 1969년에는 삼양식품과 농심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 60년대 대표적 라면 제품들 ]
삼양라면('63) 롯데라면('65) 왈순마('68)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라면, 그러나 처음에는 매우 생소했던 ‘라면’
첫 출시 당시 라면은 면에 양념이 반죽되어 있었고 조리법도 생소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라면과 같이 닭고기 국물이 기본이어서 익숙치 않은 맛이었다. ‘라면’이라는 이름 때문에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당시 시장에서 사먹던 꿀꿀이죽이 5원이었던 반면, 라면은 10원으로 비싸 소비자의 관심을 받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 라면’의 독자적 개성 확립

우리나라 제조사들은 1970년대부터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입맛에 잘 맞는 라면의 맛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때 형성된 라면의 맛이 지금까지도 한국라면의 기본 맛으로 자리잡으며 한국라면만의 독자적 개성을 만들고 있다.

짜장라면의 탄생

롯데 짜장면

최초의 인스턴트 짜장면은 1970년 2월에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에서 개발되었고, 같은 시기 삼양식품에서도 짜장라면이 출시되면서 당시 가족 외식의 대표메뉴였던 짜장면을 간편히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소고기 라면의 시대 개막

소고기라면

농심은 1970년 10월 소고기 국물을 재료로 한 ‘소고기라면’을 출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고기보다 소고기를 좋아하는데 소고기국의 깊은 맛을 라면으로 구현해보자’는 취지에서 개발된 소고기 라면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10%대에서 20%대로 급증하게 되었다. 삼양식품도 잇따라 ‘삼양 쇠고기면’을 출시하며 ‘라면은 소고기 국물’이라는 맛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소고기 라면의 개발
라면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거의 없었던 초기 국내 라면 제조사들은 일본 회사나 향료회사들이 제공하는 자료와 원료를 그대로 이용해 제품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농심은 소고기라면을 개발할 당시 소고기의 맛과 영양을 살리려면 가정이나 유명 식당에서 국물을 내는 방법대로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형 무쇠솥에 소의 고기와 뼈, 간장과 양념을 함께 넣고 푹 고아내는 방법을 고집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농심이 한국음식 특유의 깊고 진한 국물맛을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국라면의 황금기! 라면 슈퍼스타들의 탄생

1980년대 라면은 ‘황금기’를 맞게된다. 농심은 너구리(’82), 육개장사발면(’82), 안성탕면(’83), ‘짜파게티(’84), 신라면(’86)을,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는 팔도비빔면(‘84)과 ‘도시락’(1986년), 오뚜기는 ‘진라면’(1988년) 등을 출시하는 등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특히 ‘신라면’은 대부분 순한 맛 위주였던 당시 라면시장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충실한 ‘매운맛’을 제대로 구현해낸 제품으로 지금은 라면시장 부동의 1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제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농심의 잇따른 신제품 히트, 라면시장 1위 등극

1980년대에는 청보와 빙그레도 라면 사업에 뛰어들면서 라면업계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농심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1982년 스프 전문생산시설인 ‘안성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스프의 획기적 품질향상 후 ‘너구리’(82년)와 ‘육개장사발면’(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를 앞세워 농심은 1985년 3월 라면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라선다. 역전 당시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 39.6%, 한국야쿠르트 13.5%, 청보 5.9%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86년 농심은 한국의 매운 맛을 대표하는 ‘신라면’ 내놓으며 2위와의 간격을 더욱 넓혔고, 1988년 ‘사리곰탕면’을 출시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판매가 이루어지는 유명-히트작 라인업을 완성했다. 1988년 농심의 시장 점유율은 50.6%였다.
80년대 초까지 업계 선두를 유지하던 삼양식품은 경쟁사들의 신제품 출시 전략을 당해 내지 못해 1985년 선두자리를 농심에 내어주고, 1989년 ‘우지파동’을 겪으면서 시장점유율이 급감하게 되었다.

1981사발면 1982너구리 1983안성탕면 1984짜파게티 1986신라면 1988사리곰탕면  1989새우탕/우육탕 큰사발면

우지파동
1989년 11월 3일, 검찰은 ‘공업용 우지’를 수입해 라면의 튀김용으로 사용하거나, 쇼트닝, 마가린의 원료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삼양식품 등 5개사 대표와 임직원을 구속했다. 공업용 우지라는 자극적인 표현은 라면의 유해성 논란으로 확대되며 삼양식품은 물론 라면업계 전반에 큰 침체의 시기를 가져왔다. 이 사건은 1997년 8월 2일,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그대로 무죄 판결을 확정 선고함으로써 7년 9개월의 지리한 논란이 끝이 나게 된다. 결국 필요없는 오해와 논란의 증폭으로 전체 라면업계는 30~40%의 매출 감소를 겪었고, 제분업계와 제과•제빵업계, 그리고 중국 음식점 등도 연쇄적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용기면 시장 정착

산편한 사발면 신발매

1972년 ‘삼양 컵라면’이 출시된 적이 있었지만 시대상황에 맞지않고 익숙치 않은 조리법에 금방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농심은 1981년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사발 형태의 용기면인 ‘사발면’을 출시하면서 용기면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듬해인 1982년에 출시된 농심 ‘육개장 사발면’은 대한민국 용기면 시장을 급격하게 확대시키는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농심 육개장사발면도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 NBC방송에서 ‘미국의 햄버거에 준하는 식품’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컵라면? 사발면?
일본에서는 1971년 ‘컵누들’이라는 용기면을 출시했는데, ‘컵면’의 형태였다. 컵 타입의 용기는 손에 들고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안정성이 없고, 게다가 음식을 돌아다니며 먹지 않는 한국인의 식문화와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밑면이 넓직한 한국 가정의 토속적인 ‘국 사발’을 모델로 삼아 안정감을 높이고, 상 위에 올려놓고 앉아서도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사발면’이었다. 농심의 ‘사발면’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형태의 용기면으로 자리잡았으며, 지금까지도 육개장 사발면(‘82), 김치사발면(‘86) 등의 용기면 제품은 인기리에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라면 카테고리 다양화, 경계를 넘어서다

라면 카테고리 다양화, 경계를 넘어서다

이 시기는 다양한 라면제품이 출시되었으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 이루어진 시기다.

농심 등 라면업체들은 신라면큰사발, 튀김우동, 오징어짬뽕, 생생우동, 왕뚜껑, 수타면 등 다양한 맛을 가진 신제품을 풍성하게 선보였다. 또한 냉장면, 냉동면, 생면 등 기름에 튀기지 않은 신제품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98년 국내 라면시장의 매출 규모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인 라면 수출이 시작됐다. 농심은 90년대에 중국 상하이와 칭다오에,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선양과 미국 LA에 생산시설을 준공, 해당국가는 물론 인근 지역에 대한 수출을 더욱 확대하기에 이른다. 삼양식품과 팔도도 해외진출에 나섰다. 특히 팔도 ‘도시락’(’86)은 19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업소를 개설한 이후 러시아 매출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2000년 들어 국내 라면업계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수출을 활성화 하였다.
농심을 비롯한 라면업체들은 가깝게는 중국, 일본에서 멀게는 미국, 유럽, 남미까지 라면을 수출했다. 농심은 2003년 라면업계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전세계에 수출되는 한국라면

농심은 중국 심양과 미국 LA에 생산시설을 확보하여 현지 시장뿐 만 아니라 인근 국가에 대한 수출에도 나섰다. 농심은 한국의 대표 브랜드인 신라면을 중심으로 지구의 지붕인 히말라야 트래킹코스에서 지구 최남단 도시인 칠레 푼타아레나스까지 전세계 100여개국에 라면을 수출하면서 식품의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속의 신라면 자세히 보기 새창열림

웰빙면, 라면의 건면시대

이 시기 농심은 라면의 미래를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에 있다고 판단, 2007년 부산에 ‘녹산공장’을 건립했다. 농심은 한국의 전통 면류를 산업화한다는 모토 아래 천연 식재료 그대로의 풍미를 살리는 건조공법인 ‘시브이디(Z-cvd)’, 이탈리아 파스타 제조기술을 응용한 ‘네스팅(Nesting)’ 공법 등 첨단 기술로 ‘둥지냉면’, ‘후루룩국수’, ‘후루룩칼국수’, ‘쌀국수짬뽕’ 등 차세대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라면의 대중적 관심으로 제 2의 전성기

프리미엄 라면 시대 오픈

농심은 재료와 품질을 업그레이드한 ‘신라면블랙(2011)’을 출시하며 프리미엄 라면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후 팔도의 꼬꼬면(2011),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2011), 오뚜기 기스면(2011) 등 ‘하얀국물 라면’으로 불리는 1,000원대 프리미엄 라면들이 한때 반짝 인기를 끌면서 라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농심 짜왕(2015)의 대히트를 시작으로 짜장에서 짬뽕으로 이어지는 중화풍 라면들이 프리미엄 라면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라면의 재발견, 모디슈머 트렌드

2011년 하반기, ‘하얀국물’ 열풍은 금방 잦아들었지만 이로인해 시작된 라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라면을 다양하게 먹는 방법을 창출해내고 이를 서로 공유하는 모디슈머 트렌드로 이어졌다. 특히 농심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조합인 ‘짜파구리’는 모디슈머 트랜드의 핵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짜파구리에서 시작된 모디슈머 트랜드는 이후 짬짜면, 짜치계 등 여러 개성있는 레시피로 이어지면서 최근 라면시장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라면의 재발견, 모디슈머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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